나이를 먹는다는 건
나이를 먹는다는 건 김건흡 MDC시니어센터 회원 또 한 살 먹었다. 나이 한 살을 더 먹은 새해의 내 생각은 ‘나잇값’에 머물러 있다. 어떡하면 더 젊어 보일까가 아니라, 어떡하면 제대로 된 어른이 될까, 이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더해진 한 살은 공평하지만, 나이 먹음의 하중은 각양각색이다. 필시 지난날에 대한 아쉬움보다 새날에의 설렘이 크면 젊음이고, 반대이면 나이듦의 표식이겠다. 세월을 역류하려는 열망은 나이들수록 강렬해진다. 연례행사라고까지 어깨 힘줄 생각은 없지만, 새해 벽두면 꺼내 읽는 글이 있다. ‘의학계의 계관시인’으로 불리는 영국 출신 올리버 색스가 죽기 직전 뉴욕타임스에 보낸 글이다. 제목은 ‘나의 인생’. 2015년 2월 19일 자다. 신경외과 의사였던 그는 그 한 달 전만 해도 건강하다고 믿었다. 심지어 팔팔하다고까지 느꼈다. 여든한 살이지만 날마다 1.6㎞씩 수영할 수 있는 건강 체질이었으니까. 하지만 청천벽력. 암이 간으로 전이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제는 죽음을 마주하고 있다고 그는 쓴다. 그런데 왜 신년 벽두부터 복 없는 소리를 하는가. 죽음을 잊지 않을 때 삶이 온전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암을 멈추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주치의에게 듣고 난 뒤 그는 썼다. “남은 몇 개월을 어떻게 살아갈지는 온전히 나의 선택에 달렸다,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풍요롭게, 깊이 있게, 생산적으로 살겠다.” 세계적 장수마을로 꼽히는 튀르키예의 악세히르에선 가장 오래 산 사람의 수명이 20년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박노해 시인은 그 마을에서 홀연한 깨달음을 얻는다. 새해, 나이 먹음에 번다해진 마음을 내리치는 죽비소리다. “어느 가을 아침 아잔 소리 울릴 때/ 악세히르 마을로 들어가는 묘지 앞에/ 한 나그네가 서 있었다/ 묘비에는 3·5·8… 숫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아마도 이 마을에 돌림병이나 큰 재난이 있어 어린아이들이 떼죽음을 당했구나 싶어/ 나그네는 급히 발길을 돌리려 했다/ 그때 마을 모스크에서 기도를 마친 한 노인이/ 천천히 걸어 나오며 말했다/ 우리 마을에서는 묘비에 나이를 새기지 않는다오/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오/ 사는 동안 진정으로 의미 있고 사랑을 하고/ 오늘 내가 정말 살았구나 하는/ 잊지 못할 삶의 경험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자기 집 문기둥에 금을 하나씩 긋는다오/ 그가 이 지상을 떠날 때 문기둥의 금을 세어/ 이렇게 묘비에 새겨준다오/ 여기 묘비의 숫자가 참삶의 나이라오”(박노해 ‘삶의 나이’)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면 정말 꿈에서도 한 발 멀어지는 것일까. 희망적이게도 나이와 꿈에는 그다지 큰 상관관계가 없어 보인다. 나이가 들어서 하고 싶던 일을 시작하고도 뛰어난 성과를 이룬 사례는 참으로 다양하다. 일본의 의사 출신 작가 호사카 다카시의 책 〈나이듦의 기술〉에는 세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17세에 이노우가의 양자로 들어가 양조업을 일으켜 세우는 데만 전념한 이노우 타다타카는 49세에 가업을 장남에게 물려주고 자신의 꿈이었던 천문학 공부를 시작한다. 밤낮으로 천문학을 공부한 타다타카는 55세에 일본전국지도 제작을 꿈으로 삼고 71세까지 지구 한 바퀴에 해당하는 거리를 걷는다. 결국 후대에 ‘대일본연해여지전도’를 남긴다. 에도시대 유학자 가이바라 에키켄은 은퇴 후 70세에 본격적으로 작가 일을 시작해 85세로 사망하기까지 30여권의 책을 썼다. 대부분 명저라는 평이며, 그는 그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약훈〉과 여덟 권에 이르는 〈양생훈〉을 각각 81세와 84세에 써냈다. 40세에 하급무사 일을 은퇴한 후 작가가 된 간자와 도코우도의 사례도 있다. 그는 76세 되던 해 권당 450장, 전 6권에 이르는 〈할미꽃〉을 큰 화재로 잃었으나 3년에 걸쳐 복구한다. 멀리 타국에서 찾을 것도 없다. 번역가 김욱은 84세에 쓴 첫 책 〈가슴이 뛰는 한 나이는 없다〉로 작가가 됐다. 이들은 모두 70세가 넘어서 제2의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서 자신의 가장 뛰어난 업적을 이룬 이도 많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서양 지성사에 한 획을 그은 〈순수이성비판〉을 그의 나이 57세에 출간했고 영국의 저널리스트 겸 소설가 다니엘 디포는 59세에 역작 〈로빈슨 크루소〉를 써냈다. 경영학자이자 작가 피터 드러커는 60세에 책 〈단절의 시대〉를 발표한 후에도 95세로 타계할 때까지 전 세계에 통찰을 선사했다. 고대 그리스의 극시인 소포클레스는 그의 작품 중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꼽히는 〈오이디푸스 왕〉을 90세에 썼다. 독일의 문학가 괴테는 이렇게 말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이미 새로운 일이 시작됐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은 내 생에 최고의 순간을 맞이할 시간이 좀 더 가까워진 것은 아닐까. 인간은 누구나 죽어서 무덤에 묻히게 된다. 우리말 무덤은 ‘무(無)의 더미(무더미)’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아무것도 없음의 더미’가 무덤이다. 정말 인생은 이렇게 덧없기만 한 것일까? 이 물음에 미국의 시인 롱펠로는 〈인생찬가〉에서 인생의 의미를 이렇게 노래했다. 슬픈 목소리로 내게 말하지 마라/인생은 다만 헛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잠든 영혼은 죽은 것이니/만물은 겉모양 그대로가 아니다/인생은 진실이다, 인생은 진지하다/무덤이 인생의 종말이 될 수는 없다./'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말은/영혼을 두고 한 말이 아니다/인생이란 드넓은 싸움터에서/길 위에서 노숙한다 하더라도/발 없이 쫓기는 짐승처럼 되지 말고/싸움에 이기는 영웅이 돼라/위인들의 생애는 우리를 깨우친다/우리도 장엄한 인생을 이룰 수 있으니/우리가 지나간 시간의 모래 위에/발자국을 남길 수 있다/그 발자국은 훗날 다른 이가/인생의 장엄한 바다를 건너다가/조난당한 형제의 눈에 띄어/새로운 용기를 얻게 될지니/우리 모두 일어나 행동하자/어떤 운명에도 굴하지 않을/용기를 갖고 끊임없이 이루고 도전하면서/일을 통해 기다리는 법을 배우자. 아이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성숙해가는 것이 느껴지는데 노인들은 더 이상 자랄 생각을 않고 멈춰 서있다. 위로 자랄 때가 아니라면 안으로 깊어지기라도 해야 할 텐데.....성장한 만큼 성숙해야 어른이 된다. 키가 자란 만큼 고개를 숙여야 어른이 된다. 몸집이 커진 만큼 마음속이 알차야 어른이 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물려받아 성장하지만, 자신의 선택과 결단, 행동이 사람으로 성숙되게 한다.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잘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다. 나에게 묻는다. 단지 성장한 사람인가, 아니면 성장한 만큼 성숙된 사람인가. 사실 나는 더 자라고 싶다. 큰 나무로 자라고 싶다. 우뚝 솟고 잎새 무성한 나무가 되어 날개 쭉지 처진 새들이 날아와 쉬는 큰 나무로 자라고 싶다. 나잇값을 하는 어른이 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발짝을 뗀다. 행복은 사진 작업과 닮아 있다. 진정한 행복은 이미 우리 주위에 있는 행복을 발견해 내 프레임에 담아 나의 것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네가 오후 네시에 온다면 나는 세시부터 행복해질 거야”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기다리는 한 시간이 불행이 될지 행복이 될지는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이 과정은 점진적이지만 가차 없다. 그러나 노화와 죽음을 피할 수는 없지만, 남은 삶을 선택할 수는 있을 것이다. 올리버 색스는 자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 뒤, 정치 논쟁부터 거리를 뒀다. 무관심이 아니라, 거리를 두는 초연함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과 친구들, 글쓰기에 집중하면서 평온을 얻었다. 그는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맺었다. “무엇보다 이 아름다운 별에서 나는 지각력을 갖춘 존재였고 생각하는 동물로 한 평생을 살았으니, 그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특혜를 누리고 모험을 즐겼다.” 득도해야만 가능한 실천일까. 하지만 우리는 왜 작심삼일이라도 결심을 반복하는가. 그 노력의 와중에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기 때문이다. 신년 벽두다. 메멘토 모리(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김지민 기자나이 새해 나이 나이 먹음 나이 57세